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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나의 하루

내가 원하는 게 퇴사가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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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밖으로 퇴사라는 글자가 튀어나오려고하는 순간을 정말 열심히 참았다. 바글바글 끓는 냄비 같던 상태로 버티면서 끓어넘치던 거품이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사자의 마음으로 일과 사람을 대하게 되어버리면서(자의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내 스트레스도 줄어들게 됐다. 회사에 통보해야할 시점을 앞두고 갑자기 근원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원하는게 퇴사가 맞을까?

'이 회사'를 나가고 싶은 이유가 분명히 있긴 하다. 믿음이 가지 않는 리더, 무능하고 이기적인 팀원, 나를 부품으로 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회사,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내 포지션. 그런데 이 문제들이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일부가 해결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이 회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회사가 나에게 맞지 않아서 더 괴롭고 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더 나은 회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회사 밖 자연인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단 몇 개월이라도. 하지만 지금 내 처지를 냉철히 돌아보면 퇴사 후에 3개월~6개월 정도를 쉰 뒤에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새로운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는 것부터 그들에게 내가 당신들과 비슷한 컬러를 지녔다고 어필하기까지 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아아 벌써 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회사를 가고 싶은 것이 아닌데 나는 또 대단한 한 편의 연극을 해야 한다니.

그렇다면 차라리 일도 환경도 충분히 익숙해진 이 곳에서 힘을 좀 빼고 지내며 충전을 해보는 게 더 현명한 것 아닐까? 나름 스트레스도 줄어든 시점이고하니 지금의 마인드를 잘 유지하면 설렁설렁 다녀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새 직장을 탐색하고 도킹하기 위한 에너지를 쓰지 않을 수 있고, 새 직장에서 마주할 미지의 문제들에 내던져질 일도 없다. 이 안전함을 얻는 대신 내가 꿈꾸던 자유인으로서의 양질의 쉼과 충전은 얻을 수 없겠지만.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안전하지만 즐겁지 않은 선택과 즐거울 가능성도 높고 위험요소도 높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돈 걱정이 없다면 이미 퇴사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게 맞는 선택은 퇴사하고 마음 껏 쉼을 누려보는 것인 걸까.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제대로 푹 한 번 쉬고나면 맞설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떡하지?) 반대로 안전한 선택은 안전한 대신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다루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든 일이다. (퇴사하지 못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명이 커진다..)

용기내어 눈을 딱 감고 내가 정말 원했던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현실적인 여러가지 이유를 따져 퇴사를 미뤄야 하는 걸까. 내가 얻고 싶은 쉼과 자유는 반드시 퇴사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걸까.

도망인 줄 알았던 퇴사가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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