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치 호텔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시선을 강탈하는 곳이 바로 이 밀리우다. 라탄바구니(죄송)처럼 생긴 저 공간 하나하나가 테이블이라 거리두기에 아주 제격이다. 찾아보니 이쪽 자리를 코쿤석이라고 부르는군. 주변에 둘러진 나무들 덕분에 하와이안 패턴의 드레스라도 꺼내 입고 싶게 마음이 들뜬다.
들뜬 마음으로 시간에 맞춰 조명이 켜진 밀리우로 갔다. 그런데 여기서 실망스러운 일이 발생... 코쿤 옆에 있는 데스크에 도착해서 안내를 기다리는데, 누가봐도 저 사람이 지금 고객응대 담당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혼자만 하얀색 정장차림의 직원이 계속 우리를 보는 둥 마는 둥이다. 요리하는 곳 옆에 서서 메뉴 주문서만 들여다본다. 한참을 세워두다가 드디어 우리에게 다가와서 하는 말이 '뭐 도와드려요?' 순간 내가 뭘 들은걸까 싶었다. 시큰둥안 '아~ 예약하셨어요' 와 함께 예약해둔 코쿤석으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욕쟁이 할머니의 백반집이라면 맛과 서비스가 별개일지 모르지만 5스타 호텔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얘기가 다르다. 음식, 고객응대, 공간까지 종합적으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문 앞에서의 서비스 경험은 어느 정도 오늘 저녁식사가 어떤 퀄리티일지 예측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자리에 앉았다. 시선을 강탈하는 강렬한 조명이 코쿤 안을 가득 채운다. 실제로는 이 조명이 상당히 정신사납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찍어온 사진들이 꽤 선명하게 잘 나왔다.
이 밀리우 디너코스도 해비치골프패키지에 포함되어있어서 선택권은 없었다. 코스 이름은 에바종이고 총 6코스로 준비된다. 서버들이 대체로 연령대가 낮았고 정말 친절했지만 프로페셔널하지는 않았다. 코스를 설명할 때 본인의 취향에 대해 말한다거나 요청하지 않은 설명을 한다거나(아뮤즈부쉬가 뭔지...라거나...) 하지만 기분이 상할 정도는 전혀 아니고 오히려 열심히 그리고 또 친절하게 애써준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정도였다. 입장할 때 안내한 매니저도 같은 톤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히려 밀리우 서비스를 인간적이고 따뜻하다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다.
스파클링과 스틸워터. 둘 다 요청했다.
처음 준비된 버터와 빵이 정말 맛있어서 금방 먹어버린 탓에 버터를 하나 더 요청했다. 그런데 두 번째 버터는 냉장고에서 바로 나와서 접시가 차가운 상태라 버터가 떠지지 않았다. 버터가...네..안 녹아서..
아뮤즈 부쉬로 불쾌했던 기분을 조금 덜어냈다. 이미 좀 지나서 각각이 무슨 맛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특히 가운데 윗쪽에 있던 튀일 베이스의 메뉴가 특히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서빙될 코스가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겠구나~하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다음으로는 도미와 아스파라거스. 나는 아스파라거스를 선택했다. 왜 이 메뉴를 만들었을까. 아스파라거스는 소스와 따로 놀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재료의 신선함이 부각된 것도 아니고 아스파라거스가 맛있게 조리된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도미 사시미 메뉴와 나란히 놓고 선택하게 했을까. 짝꿍은 도미를 선택했는데 내 아스파라거스를 한 입 먹어보고는 아스파라거스가 훨씬 낫다고 했다. 믿을 수 없어서 냉큼 도미를 한 입 먹어봤고..네..그만..
오늘의 바다라는 메뉴와 전복 중에 고르는 메뉴였고 서버분이 행복한 얼굴로 자신은 전복이 더 맛있는 것 같다며 귀여운 추천을 해줘서 전복을 선택했고 실패했다. 브로스Broth를 따로 가져와서 부어주는 방식이다. 앞의 메뉴와 마찬가지로 브로스까지 한 번에도 먹어보고 재료별로 따로도 먹어봐도 서로 조화가 안 된다. 가장 아래에 깔린 그린빈과 당근은 식감이 살아있을 정도로만 조리되어있어서 그런지 특히 자기 주장이 강했다.
이쯤되니까 이 에바종이라는 메뉴에 16만원이 적혀있는게 납득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패키지에 포함되어있었던 디너라서 따로 찾아보지 않고 왔던건데, 이 코스 혹시 골프 패키지 고객들한테만 끼워파는 호갱전용코스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구 검색을 해봤더니. 그냥 식사만 위해서 방문한 사람들도 많이 선택하는 코스였던 것. 믿을 수 없지만 다른 시즌에는 더 맛있었겠거니...
가장 맛있게 먹은 메뉴는 랍스타다. 추가금이 25,000원이나 들었지만 그래도 바꾸길 잘했다. 랍스터도 식감과 온도까지 잘 맞춰주었고 비스큐소스도 잘 어울리고 가니쉬도 랍스터의 짭쪼롬함을 중화시켜주는 훌륭한 조합이었다.
디저트 타임. 이제 더이상 기대라는 걸 하기는 힘든 상태다. 하나는 얼그레이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케이크같은 거였고, 또 하나는 한라봉이 테마인 디저트였다. 섬세함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나는 한라봉 디저트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시큼새콤해서 입을 깔끔하게 해주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한라봉 아이스크림, 아몬드크럼블, 한라봉 크림을 한라봉 소스로 만든 글라사주에 가둔(?) 케이크 같은 거였다. 한라봉크림케이크의 신 맛이 강하긴 했지만 세 요소가 서로 새콤 달콤 바삭의 균형을 비교적 잘 잡아줬다.
수제 젤리와 생초콜릿, 티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초코쿠키가 담긴 작은 상자를 선물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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