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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나의 하루

롤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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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열린 제자리멀리뛰기대회 ;)

롤모델이라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스승다운 스승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내 인생에 처음으로 닮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우리 팀장님. 지금은 퇴사하셔서 다른 분이 그 직함을 대신하고 있다. 처음으로 내 인생에 분명한 자국을 남긴 사람이다. 물론 그의 모든 것을 닮고 싶은 것은 아니다. 엉뚱한 곳에서 철없이 굴 때도 있었고 일을 대충처리해서 성가실 때도 있었다. 그의 단점은 보통 같은 직급으로서 함께 일할 때 발현되는 것들이라 과거 그의 동료들은 꽤나 고통받았을 것이다(ㅋㅋ). 하지만 팀장으로서, 리더로서 배울 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를 믿었다. 우리가 맡은 일을 알아서 잘 하리라고 믿었고, 자신보다 더 훌륭한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어주었다. 회의를 할 때 그는 의견을 내는 회의참석인원 중의 한 명이었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었다. 수평적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팀엔 직급이 있었지만 모두가 같은 동료였다. 바쁘지 않을 때 아니 어쩌면 바쁠 때까지도 빨리 일하고 커피마시러 나가자거나, 어제 야근했으니 오늘 아침엔 충분히 자고 오라고 해주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그렇게 말할수록 팀원들은 책임감이 더 강해지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일이 잘 되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간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팀원 한 명 한 명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길었고 가끔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을 잡아먹는단 생각이 들 때도 적지 않았지만 (ㅋㅋ) 어느 순간 그는 웬만한 친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팀장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때 업무를 맡고 싶은지 아닌지에 대해 나의 생각을 묻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미정이더라도 업무가 떨어질 것 같은 촉이 있으면 그 때부터 모든 과정을 공유해주었다. 그래서 업무가 떨어지기 전에 나 스스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거나 하다못해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팀장으로서 나서야 할 때를 정확히 알았다. 타팀 혹은 윗선의 불쾌한 요구들, 파트너사와의 크고 작은 문제들, 그외에 실무자가 곤란에 빠졌을 때 모두 '제가 책임집니다'라는 말과 함께 강경히 나서주었다.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격려해야할 때도 놓치지 않았다. 누군가가 맡은 일을 다 끝냈다고 보고를 하면 'ㅇㅇ가 ㅇㅇ를 끝냈다고 합니다! 우리 박수 한 번 칩시다!' 라며 모두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모두 민망해했지만 나중에는 팀장님이 없어도 누군가가 어떤 일을 끝마치면 다함께 박수를 쳐주고 '고생했다! 짱이다!' 라고 박수와 큰 소리로 신나게 격려해주는 분위기가 됐다. 팀장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도 'ㅇㅇ가 ㅇㅇ때문에 고생하는 거 잘 알아, 그래서 내가 정말 고마워' 라는 말을 참 편하게 하셨다. 그의 칭찬은 대단한 능력에 대한 감탄이라기보다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 표현이 많았다.

 

그의 리더십 아래에서 조금만 더 배울 수 있었다면, 그 방식을 나도 체득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같은 상황에서 나도 그렇게 대응할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도 이런 팀장을 한 번이라도 만나봤다는 것, 그의 곁에서 그가 만들어낸 수평적이고 신뢰에 기반한 팀워크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를 책임지는 직급이 되면 이 짧은 기억을 토대로 그들에게 좋은 우산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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