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되는게 좋아서 혹은 보온보냉 효과가 좋아서 텀블러를 쓴 지는 10년도 더 넘었고, 일회용컵을 전혀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텀블러를 쓴지는 1년이 넘었다. 그리고 매장에서 아이스 음료를 마실 때 쓰기 위해 유리빨대를 들고다닌 것도 반년이 넘었다.
플라스틱 컵에 아이스를 가득담아 찰그락 찰그락 소리를 내며 마시는 아이스커피는 분명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즐거움들이 내가 떠난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 어딘가에 쌓여있다는 것이 다소 소름끼친다. 내가 커피를 사마신 지난 십여년간의 플라스틱컵은 대부분 버려졌을 때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단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실 일회용을 쓰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기고나서 텀블러를 들고다니려니 무겁다. 그래도 어쩌겠나.
일주일간 일회용잔을 하나도 쓰지 않은 뒤, 내가 받지 않은 일회용 잔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보았다. 8개. 다이소에 아이스용 일회용컵이 쌓여팔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생각보다 부피가 크다. 이걸 쓰고 버리면 막연히 없어진다고 생각했다니 나의 얕은 사고방식이 한탄스럽다. 이 물건은 버려져서도 팔리기 전 만큼의 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플라스틱빨대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일회용컵보다 훨씬 쉽다. 유리빨대를 한 번 써보고나니 이 부드러운 촉감과 기분좋은 투명함 때문에 플라스틱이건 종이건 다른 빨대는 그닥 입에 대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깨질까봐 들고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손수건에 세척솔과 함께 돌돌 말아서 들고다니면 땡이다. 깨지지도 않지만, 그래도 깨질 것이 걱정된다면 조금 더 도톰한 천에 말아다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용후에는 카페 세면대에서 한 번 가볍게 행구고 손수건에 말아가져와 집에서 싹싹 세척한다.
내가 주로 들고다니며 사용하는건 1mm 두께, 외경 8mm, 200mm길이인 중국산 유리빨대다. 몇 개월 전만해도 이게 거의 최선이었는데 이제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열탕소독이 가능한 파이렉스 소재로도 만들어서 판다. 최근에 파이렉스 소재가 탐나서(ㅋㅋ) 재주작업실에서 215mm길이로 판매하시는 것을 짧게 요청해서 구매하기도 했다. 나는 보통 350~390ml의 컵에 주로 쓰기 때문에 들고다니며 쓰기에는 200mm가 가장 좋고, 사진의 것은 집에서 얕은 컵에도 유리빨대로 마시고 싶어서 160mm로 구매한 것이다. 재주작업실에서 파는 유리빨대는 두께가 1.5mm인데, 1mm나 1.5mm나 사용감에선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외경은 중요하다. 나는 8mm가 딱 좋다.
비닐은 사람들이 종이봉투를 너무 많이 써서 나무가 없어질까봐 걱정한 한 사람의 발명품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다들 비닐과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다는 명목하에 다시 종이를 소비한다. 환경에 가장 좋은 행동은 한 번 산 옷을 오래오래 입는 것이라고 한다. 새 물건을 살 때 느끼는 말초적인 즐거움 대신 내 낡은 물건을 이리저리 고쳐쓰며 나의 색깔을 묻히는 은근한 즐거움을 배워갔으면 한다. 이 유리빨대와 텀블러들도 닳고 닳을 때까지 오래도록 쓸거다. 새로운 색깔 나와도 정말 안 사고. 체리모양 오브제가 붙어나와도. 정말 안 살거다. 정말 너무 사고 싶지 않아서 상상만해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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