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한다면 모르기 어려운 카페다. 여기저기에 훌륭하다고 소개도 많이 되었고 여길 다녀온 사람들의 간증?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커피야 다들 워낙 많이 얘기했으니까 나는 조금 다른 얘기를 남겨놓으려고 한다.
여기서 일하시는 바리스타분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물론 지인이라는 뜻은 아니고. 처음 이 바리스타를 뵌 건 홍대 정문 앞 뒷골목의 아주 작은 카페였다. '커피볶는 곰다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고 그때도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와 책, 음악으로 꾸며진 내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바리스타는 두 분, 곰사장과 문어사장. 그리고 문어사장님이 지금 헬카페의 바리스타다. 내가 핸드드립과 싱글블랜드에 대해 아는 게 0이었을 시절이었는데, 문어사장님이 자신있게 핸드드립을 내려주곤 '맛있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어느날 느닷없이 곰다방은 자취를 감췄다. 전해들은 바로는 곰사장님은 커피 업계를 떠날 것을 고민하셨다고 했고 문어사장님은 업계를 떠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1년이나 지났을까, 앤트러사이트에서 우연히 문어사장님을 다시 발견했다. 자신의 색깔이 흠씬 묻어나는 공간과 음악 속에서 커피를 내리던 문어사장님이 여러 명의 바리스타 노동자 중의 한 명으로 컨베이어 벨트에 앉아있는 것 마냥 반복적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모습에 괜히 나까지 답답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가끔 김정일 티셔츠 같은 걸 입고 나타나실 땐, 여전하시구만, 싶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안 보이는 거다. 알고보니 커피 맛에 타협이 되지 않아 문제가 터진 모양이었다. 허허.
그리고 헬카페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엔 내 동선에 전혀 맞지 않는 위치라 곧장 쫓아가보게 되지 않았다. 그냥 헬카페가 잘 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 따뜻했던 곰다방이 다시 문을 열고 흥한다는 소식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 시절의 나까지 응원을 받는 듯한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왜 오늘이어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헬카페를 찾아갔다.
늘 여유있게 앉아있을 수 있던, 침침하지만 음악이 가득차게 들리던 곰다방과는 참 다르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리고 (세상에! 디저트도 있고!) 10인용 테이블에 탑승 정원을 넘겨가며 모두들 낑겨앉아있다. 사람이 정말 너무 많아서 그 그림자 때문에 내부가 더 어두워질 지경이었다. 그 사이사이로 빈 공간없이 음악이 꽉 메운다. 선곡도 좋고 사운드도 좋고. 둘러 앉은 사람들은 노트북도 하고 책도 읽고 여기저기 커피 평론을 하기도 한다. 만약에 곰다방이 문을 닫던 그 날, 문을 닫고, 집기를 팔고, 죄송합니다를 문 앞에 붙이던 그 날, 그가 커피에 등을 돌렸다면 이 모든 건 오늘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이 맛있는 플랫화이트도, 이 위안이 되는 공간도, 속이 시원하게 울려주는 음악도.
주섬주섬 나갈 짐을 챙기다가 볶은 원두가 눈에 들어왔다. 데바스테이트에서 사온 원두가 남아있지만 괜히 헬카페의 원두를 사가고 싶어서 '금방 먹으니까'라고 꽃 중의 꽃 합리화를 피웠다. 계산한 원두를 받아들고 포근한 마음으로 돌아나왔다. 무심결에 원두백의 바닥을 뒤집어봤는데, 제조 및 판매: 펠트 ... Aㅏ...
* 에스프레소와 스팀우유를 가져와 눈 앞에서 바로 부어준다. 그리고 곧장 한 모금을 마시라고 하기 때문에 다들 사진을 보면 한 모금 마신 뒤에 찍은 것 뿐이다. 라떼아트수련자에게 눈 앞에서 라떼아트를 해주는 건 정말 최고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2017. 2. 7.
블렌드 원두 200g 12,000
헬라떼 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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