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 올 때마다 이 작은 가게 앞을 지나갔다. 버스를 타고 지나기도 하고 걸어서 지나기도 하고 건너편에서 볼 때도 있고. 늘 고소한 튀김 냄새가 풍기고 줄이 길어 눈길이 가던 곳이지만 가고싶은 곳이 근방에 널린 터라 선뜻 긴 줄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런데 조류독감 여파인지 강추위의 은혜인지 줄도 없고 테이블도 비어있어 냉큼 자리를 잡았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테이블마다 벌겋게 둥둥 떠있는 술취한 얼굴들이다. 낮은 천장과 나무 기둥으로 파티션을 나눈 예스러운 분위기와 퍽 잘 어울리는 얼굴들이다. 오래되어 낡은 느낌보다 청춘의 호시절을 잃지 않은 단정하고 정정한 연륜이 묻어난다.
18년 전쯤 대학생 사촌언니가 신촌 앞에 카페인지 호프인지 모를 곳에 데려간 적이 있다. 음악이 흘러나왔고 오믈렛도 팔았고 소파가 검정색이었고 나는 우유를 마셨던 곳. 따뜻한 우유를 주문했는데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너무 돌려서 하얀 막이 둥둥 떠 있었다. 아마도 우유를 시킨 사람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지. 하얀 막을 걷어내고 마신 우유는 맹맹한 맛이 났다. 그 날의 그 곳으로 시간여행이라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든다. 우유와 치킨은 꽤나 거리가 먼데.
하지만 이 분위기와 정취가 주는 맛을 빼고 냉철하게 치킨만 본다면, 사실 이보다 나은 집은 얼마든지 많다. 양념보다 후라이드를 좋아하는 내가 주문한건 후라이드 마늘 반반이지만 원래 미락치킨의 시그니처는 '마늘치킨에 통마늘 추가'다. 구운 통마늘 덕분에 마늘치킨이 더 높은 별점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겐 별로였다. 옛날통닭 스타일의 후라이드는 오히려 마늘치킨보다 경쟁력있게 느껴졌다. 튀김옷은 바삭했고 속살과 분리되지 않았으며 속살은 촉촉하지는 않아도 충분한 수분과 육즙을 머금고 있다.
맛에서는 어쨌든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인데 맛으로 이리재고 저리재고 하고 싶지 않은 요상한 집이다. 일하시는 분들이 친절한 것도 아니었고 맥주가 아니라 콜라를 시켜서 팝콘도 못 먹었고 저녁 때를 한참 지나 굶주린 위장으로도 맛있지 않았는데, 그냥 미워할 수 없다. 언젠가 이 앞을 지나다 맥주 한잔하러 스륵 빨려들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17. 2. 3.
마늘/후라이드 반반 17,000
콜라 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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