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양가에 '적당히'하고 우리 둘이 만든 새로운 가정에 집중하며 보내기로 다짐하고 약속하고 난리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적당히'의 정의가 서로 조금 달랐다. 아아 (먼산).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시월드에 비해 좋은 시댁을 만났는데도 명절이나 시댁에 가는 날마다 다툼이 이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현실화되지 않아서 그렇다. 왜 친정에 갈 때는 싸우지 않을까? 친정에서는 딸도 사위도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아니 거절이란 걸 할 수 있다. 안 되면 안 된다고 일찍 가야 하면 가야 한다고. 시댁에서는 그렇지않다, 물론 며느리만. 같은 일도 내가 하기로 선택해서 하는 것과 명령이라서 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 감내하는 것은 따뜻한 감정을 갖게 하지만 암묵적인 분위기에 등떠밀려 마지못해 싫은 일을 하다보면 그 작은 억압이 불만으로 분노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시댁이 한참 미워지기 시작할 무렵에 이르러 남편이 다행스럽게도 1인치정도 계몽되었고 그 나비효과로 연휴의 마지막 날, 데이트를 했다. 우습게도 시댁에서 계획보다 조금(두 시간쯤) 일찍 나와주고 따뜻해진 주머니에 내 손을 잡아 넣어주는 것 만으로 결혼을 후회하던 (명절이 다가올 때의 일반적인 현상) 최근 며칠의 우울함이 휘발성 알콜처럼 날아가버렸다.
모든게 꽁꽁 얼어붙는 저녁이었지만 툴툴거리며 내 손이 폭 안겨있는 주머니를 쫓아가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내 주머니는 이렇게까지 따뜻하지 않은데, 짝꿍의 주머니에는 핫팩처럼 따뜻함이라도 들어있는 걸까. 미끌미끌 바닥도 여기저기 얼어붙어있어 발끝에 힘을 주고 오르막을 올랐다. 그리고 보이는 김서린 나무 미닫이 문. 불이 꺼진 컴컴한 가게들 가운데에 켜진 노란 불빛이 어찌나 따뜻해보이던지 길 건너에서부터 발을 동동 굴렀다.
아직 손이 꽁꽁 얼어있는데 음식이 나왔다. 숟가락을 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잘 우려낸 깔끔한 멸치국물이 한 숟갈 입에 들어가고 나니 얼얼하던 코끝이 스르륵 녹는다. 이제야 왁자지껄한 다른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다들 불고기 파전은 하나씩 꼭 시켜두고 맥주며 정종을 곁들인다. 으 정종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던가. 바삭하고 짭쪼롬한 불고기와 달달하게 익은 파, 그리고 뜨끈한 국물의 조화란. 지금이 으스러지게 추운 겨울밤인 게 나쁘지 않다.
2017.1.30
불고기파전 15,000
도동탕면 7,000
사케 잔술 5,000
정종 잔술 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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