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옛날부터 가보고 싶어 리스트에 넣어둔 식당이다. 기회가 없었다기보단 식당 하나를 보고 원주까지 선뜻 가기가 쉽지 않아 지금까지 미뤄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추워서 이불밖이 피지컬리 위험하다는 주말에 원주행 버스를 올라탔다. 오전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저녁에 빈 자리가 있는지 물었고 다행히 6시와 7시 중에 고를 수 있었다.
비스트로 소로를 운영하시는 분은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아 프로방스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그 여행 기록으로 책도 내고, 한동안은 여행지에서 공수해온 재료들로 메뉴를 선보이기도 했다. 으. 그때 왔어야 했는데. 난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만 누르며 수동적인 팔로잉을 하고 있는데, 멋들어진 스텝밀(사실 혼자 하시지만)과 메뉴 사진을 보며 소로에 대한 환상이 자꾸만 커졌다. 그리고 그 환상은 이리저리 뻗쳐서, 이 분이 자주 간다는 카페까지 궁금해지고 말았다.
원주카페 르미엘의 딸기쇼트케이크. 피오니의 케이크와 싱크로율 99%
원주를 다녀오는 일정이 촉박했기 때문에 식전에 카페를 들렀는데 케이크는 맛있었지만 레이스레이스여성여성한 것이 내 스타일과 너무나도 먼 것... 그래서 왕복 네 시간의 걸음이 헛것이 되는 것은 아닌지, 또 인스타의 네모난 창에 속은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눈에 들어온 비스트로 소로의 외관은 10년 15년 전의 어수룩하면서도 멋스럽고 따뜻하던 홍대앞 가게들을 떠올리게 했다. 정제되지 않은 취향을 자유롭게 쌓고 늘어놓고 그려놓던 그때의 홍대.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갑작스레 고개를 든 과거의 모습에 문앞까지 가져왔던 불안감을 잊었다.
사실 내가 기대한 메뉴는 이탈리안이 아니다. 아니 이탈리안만 아니길 바랐다. 소로는 메뉴가 계속 바뀌고 최근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태국음식이나 베트남 음식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 짝꿍도 그 부분이 실망스러웠던 모양이지만 자신의 파스타와 비교해보고 셀프크리틱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내 마음을 가볍게 해줬다. 그래서 우리가 주문한건 토마토리코타치즈리조또와 버섯크림파스타.
버섯크림파스타와 토마토리코타치즈리조또
토마토리조또는 한국식 토마토의 산미를 그대로 살렸다. 중간중간 씹히는 마늘쫑이 '나 만만한 리조또 아니야'하는 것 같아 재밌다. 신경쓰지 않은듯 툭툭 얹어진 리코타치즈는 익힌 토마토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데, 플레이팅 그대로만 본다면 리조또에 얹어먹게 될 확률이 크다. 하지만 강한 맛의 리조또에 부드럽고 연한 리코타를 얹어먹으면 리코타는 식감만 남기고 슥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리코타를 토마토와 먹도록 유도하는 플레이팅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이 사랑스런 조합을 맛볼테니까. 버섯크림파스타는 버터가 많이 들어갔는지 풍미가 확 올라온다. 다소 간이 센편이지만 나쁘지 않았고, 면도 버섯도 무심하게 뭉쳐진 고기도 적당히 익었다. 청양고추가 들어있어서 갑자기 친근한 매운 맛이 올라온다. 정통 이탈리안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 부분은 다소 식상한 조합이라 그런지 아쉬웠다. 그래도 빵을 함께 줬다면 스칼페타감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원주까지 간 것이 아깝지 않다. 원주까지 또 가서 먹기에는 힘들지 모르겠지만 이 날 당일치기 여행이 실망스럽지 않게, 충분히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줬다. 돌아오는 걸음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영하 10도를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니까?
그런데 원주맛집 검색하면 홍게가 나온다? 무한리필 홍게 이만오처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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