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니예에서 유래없는 얼리버드행사를 했다. 스와니예의 어필링포인트는 3~4개월 마다 '주제'에 맞춰 달라지는 코스라는 점이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반복한다면 이 셀링포인트를 더 강조하는 장치가 될 것 같다. 이준쉐프님이 직접 음식 설명을 해주시기도 하고. 가격 할인도 있었는데, 파인다이닝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첫 서비스라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에 대해 서로 양해하게 하는 기능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이번 에피소드의 '주제'만 알고 구체적인 코스는 알지 못한 채로 식사를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평범하게 점심식사를 하더라도 검색하고 음식 사진과 구성, 인기메뉴쯤은 미리 알고 가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먹을 음식의 그림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움이 배가 되다니. 물론 나는 수완이네에 와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음식 수준과 스타일을 알고 있으니 두려움없이 즐거움만 있을 수 있었다. 어디에서 뭐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한 끼에 15만원 이상을 배팅하기는 쉽지 않지.
오늘은 식사만 제공되는 날이라 페어링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 글라스로 주문은 가능하다.
안녕하세요
에피타이저가 6가지 나왔다. 첫 플레이트는 바로크 미술을 표현한 장어, 로코코 양식을 적용한 토마토. 장어가 감칠맛이 강하고 간도 세서 첫 판부터 점프하고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토마토 비스킷이 먼저인게 더 좋았을 것같다.
그 다음은 파래칩과 멍게튀김이다. 시각적으로도 벌써 알 수 있는 자연주의ㅋㅋㅋㅋㅋ 파래칩은 안에 돼지고기 테린이 들어가 있었고 딜 향이 강하게 난 기억이 난다. 크리미하고 감칠맛이 강해서 장어타르트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그 다음은 멍게를 먹물에 튀겨서 조약돌처럼 만든 것ㅋㅋㅋ 너무 귀엽고 요거 아주 맛있었다.
다음은 인상주의 ㅠㅠㅠ 세상에 빛의 움직임을 이렇게 바질오일이 찰랑거리는 느낌으로 표현하다니 너무 훌륭하다. 송어알의 색감도 톤이 너무 잘어울린다. 오른쪽은 안에 브로컬리랑 이것저것 들어있고 위에 컬리플라워무스로 덮은 음식인데 위에 뿌려진 녹차가루에서 쓴 맛이 났다. 안에 들어있는 자몽과 어우러져서 쓴맛 시너지가 나는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자몽은 과육 알맹이만 넣을텐데.... 아무튼 쓰다고 피드백을 드리고 싶었는데...끝내 말하지 못하고 왔다...
참지 못하고 와인도 주문. 전체 코스 페어링이 되지 않으니 몇가지만 골라서 글라스로 주문했고 추천 받아서 주문한 이 와인이 마리아주가 진짜 좋았다. 물개박수. 줄무늬 전갱이를 무로 감싸고 허브 마구 올려주었음. 소스는 옥수수, 라즈베리 소스, 딜 오일.
큐비즘ㅋㅋㅋㅋㅋㅋ을 표현한 디쉬! 당근이다 당근! 너무 귀엽고 창의적이고 최고다. 조금 아쉬운 건, 당근도 호불호가 심한데 치즈도 향이 강한 것을 사용하신 점, 당근인데 당근 풀이 표현이 안된 것ㅋㅋㅋㅋ 맛은.. 단호박맛이라...투여하신 노력(...10시간 졸이고....)대비 그저 그랬지만 시각화가 너무 재미있었다.
스와니예의 페어링에 신뢰가 높아서 다른데서 거의 실패하는 오렌지 와인 주문. 마리아주는 당연히 아주 좋았는데, 거의 전통주가 떠오를 정도의 톤이었고 도수도 꽤 높았다. 전복이나 생선같은 해산물류를 간장 베이스로 조리한 음식과 모두 잘 어울릴 것 같은 와인이다. 이건 사실 음식만 먹었으면 너무 별로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서 와인이 구원해준 느낌. 라비올리 크기가 너무 커서 먹기 불편했고, 프로타주 느낌을 내시느라 그랬는지 피도 너무 두꺼워서 아쉬웠다. 이 디쉬의 테마는 초현실주의. 르네마그리트 그 초현실주의? ㅇㅇ..
프리 메인으로 나온 농어. 이게 제일 이해가 안 가는데 왜 이 시기에 무를 썼을까???????? 이렇게 강하게 조리해도 쓴 맛을 숨길 수 없는 여름무를 대체 왜 썼을까??????? 추상표현주의를 표현하기가 어려워 마크로스코 그림을 그대로 시각화했다고 한다.
왠지 마리아주가 좋을 것 같아서(???) 와인도 주문. 앤디워홀의 캠벨스프를 스와니예로! 귀엽 ㅠㅠㅠㅠ 서버분이 캔을 슥 들어 촉촉한 치킨과 푸아그라 계란찜을 등장시킨 다음 능이버섯과 닭육수로 만든 소스를 부어주신다.
메인은 옵아트. 이베리코, 한우, 랍스터 중에 랍스터 골랐다. 한우랑 랍스터는 +30000 (왜 어딜가나 메인 옵션은 3만원인가요? 3만원 규칙은 누가 정한걸까?) 동충하초가 올라가 있고 딱 맛있게 익은 샬롯, 브로콜리니, 그 밑에는 어니언크림이다. 옵아트라고 했는데 봐서는 잘 이해가 안가고 분명히 이렇게 표현된 이유를 설명하셨을 것 같은데 잘 안 들어서 모르겠다;;
디저트는 미니멀리즘 ㅋㅋㅋ 복숭아+로즈마리 아이스크림 너무 맛있었다 옆에는 초콜릿으로 커버한 라즈베리였나...
이어지는 미니멀리즘 디저트 ㅋㅋㅋ 머랭으로 샥 가렸다. 수박과 베리.
사실 이건 짝꿍이 시켰고 나는 트러플과 감자...시그니처 못 잃...네..
꼬두람이랑 직접 블렌딩했다는 잎차. 레몬그라스와 히비스커스.
정리하자면 페어링 없어도 맛있고 재밌었지만 WINE IS THE PERIOD! 역시 파인다이닝은 페어링이 있어야 완성이다. 아 물론 페어링 얼리버드도 있었는데 그건 촬영을 동반한다고해서 부담스러웠다. 얼리버드로 할인 받은 것도, 이준쉐프님을 본 것도, 뭐가 나오는지 몰라서 재밌었던 것도 다 좋지만 솔직히 얼리버드를 또 신청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얼리버드로 할인도 해주길래 피드백을 받아서 코스를 완성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내 속도대로 식사를 할 수도 없고 (모든 코스가 동시에 나온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상기된 상태로 식사에 참여해서 부산스럽기도 했다. 다음엔 사람 많지 않은 평일 디너로 가서 페어링도 하고 느긋하고 조용하게 스와니예의 creativity를 응원하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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