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언리미티드에디션 첫째날이라 눈뜨고 아침밥 먹자마자(1시..) 핸드폰 놓고 나온 줄도 모르고 달려갔는데 이미(2시...) 줄이 엄청나게 길어서 내일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나는 뭘 잘 잃어버리는 성격이 아니라 핸드폰을 놓고 나오는 법이 없는데, 지하철을 타고서야 핸드폰이 없단 걸 깨닫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핸드폰이 없는 하루가 시작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트북은 들고 나와서 지금 이렇게 인터넷에 접속했다.
핸드폰이 없으니까 일어난 첫번째 증상은, 괜히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화올 곳도 없고 울리는 카톡도 평범한 내용이거나 반갑지 않는 사람에게서 오는 것들 뿐이므로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가르쳐주며 첫번째 증상을 떨쳐냈다. 불안감이 떠나고나니 모바일 안에서 날 기다리던 게임들이 텔레파시를 보내기 시작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게임을 참 많이 했구나 싶었던 순간. 그 순간, 오늘은 조금 더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앞으로도 종종 핸드폰을 놓고 다녀 볼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언리미트에디션 입장에 실패하고 과제를 할 카페를 찾아보려는데, 핸드폰이 없으니 뚜벅이로 뒤지는 수밖에 없다. GPS와 현대사회의 네트워크망으로부터 유실된 존재가 된 것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어느 방향이 번화가인지, 어느 카페가 노트북을 하기 좋은지 고개를 들이밀고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방법이 없다. 핸드폰이 없었을 때, 도대체 어떻게 살았지?
장대비를 피해 무사히 들어온 카페에서 녹차라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한동안은 아무 생각없이 인스타그램이며 포스퀘어며 스크롤을 해대야 하는데, 오늘은 없다. 하루가 알차지는 느낌이다. 읽던 논문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와 사전을 쓰려니 노트북을 켜야해서 불편했다. 일의 효율을 위해 핸드폰이 필요한 건 정말 딱 이 순간 한 번 뿐이더라. 덕분에 이 글은 사진 한 장없이 올리게 됐지만, 나쁘지 않다. 예쁜걸 보면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습관이 있었는데, 사진을 못찍는다는 아쉬움에선지 한 번 더 눈에 깊이 담게 된다.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됐지만, 인터넷에 24시간 로그인해 있을 필요는 없는 거다. 내 주위를 둘러싼 보들보들한 쿠션, 라떼가 담긴 도자기잔, 창밖의 사람들,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처마까지 기계의 도움없이 온전히 한 '사람'으로서 감상한 기분이다.
다른 날보다 더 짙은 삶의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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