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를 만나고나면, 오늘 만났는데도 내일 또 만나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내게는, 감사하게도, 그런 친구가 두 명이나 있다. 한 친구는 늘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핵심이 되는 지점을 짚어줘서 나를 반성하게 한다. 워낙 잘 들어주기에 만나면 내 얘기만 너무 떠들어댄 것 같아 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아주 깊은 층위까지 타고 내려간 자신의 심도있는 고민과 생각을 풀어놓는 친구다. 늘 나를 멋진 사람으로 치켜세워주는터라 가끔은 내가 더 멋지게 보여야하는 것인가 싶은 부담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친구의 표현과는 정반대로, 내가 얼마나 얕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서 되려 내가 부끄럽기 일쑤다.
오늘, 방금 이야기한 두 번째 친구를 만났다. 아주 오랜만에, 오랜만이라고 해봐야 석달이지만,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우리 둘 모두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결혼식을 올렸고 다시 학업을 시작했으며 나고 자란 동네를 떠나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친구는 그 사이 두 번의 길고 묵직한 해외출장을 다녀왔고 사업에 일어난 약간의 파도를 타야했고 인간관계를 배우느라 복잡하게 앓았다. 대강의 근황을 듣고 가장 궁금했던 건, 출장이자 약간의 쉼도 겸했던 미국여행. 나 역시 남편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고 남편과 여행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는 국적과 인종, 살아온 배경, 겪은 역사 그런게 전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잖아.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 사람.'
여행이 더 유익하냐 독서가 더 유익하냐는 토론 주제를 마주쳤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여행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땐 여행이라는게 뭔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진짜인 것 같고, 독서는 아무래도 간접적인 학습법같고. 하지만 지금 다시 답해보라면, 여행도 독서도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답하고 싶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여행은, 그 땅에서 지내다온 것일 뿐이었다. 멋진 건축물과 오래된 그림들이 주는 감동도 거대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건 물리적으로 우리나라에 옮겨올 수도 있는 사물이지 않나. 정말 옮겨올 수 없는 것, 스트리트 뷰로도 화집으로도 역사책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은, 그 곳에서의 삶이다. 그리고 삶이란 사람이라는 존재가 매일 매일 숨을 쉬며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결국 여행은 사람인 것이다.
서너시간의 짧은 대화로, 나는 마치 홍대앞 카페에 앉은 채로 미국의 작은 호스텔에서 십여명의 외국인 친구들을 사귄 것 같았다. 친구는 타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많은 것을 발견했고, 생각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사람과 삶을 정중하게 직시하는 친구의 태도가 멋지다. 아니, 존경스럽달까. 생각은 꼬리를 물어 살던 곳을 떠나야지만 여행일까.하는 질문까지 다다랐다. 다들 여행을 다녀오면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고 말하지 않나. 하지만 내가 더 정성스럽고 겸손하게 삶과 사람들을 대한다면 나의 매일의 삶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평범한 저녁시간이었지만 이 시간동안 나는 멋진 세계를 만났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나를 위해 이만큼의 시간을 내어 준다는 것이 부끄러울 만큼, 멋진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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