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로그

[골린이에게] 골프는 왜 재미있을까

밀크비스킷 2022. 10. 2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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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골프는 아저씨들이나 보는 지루하고 심심한 TV채널이었다. 탁구공만한 작은 공을 굳이 길고 가는 막대기로 치고 걷고를 반복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운동. 박진감 넘치는 함성도 땀흘려 뛰는 사람도 없는 심심하기 그지없는 경기. 그런데 내가 그 게임의 재미를 알게 됐다. 은은한 재미냐고? 아니, 돌아버리게 재미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골프를 전파하려는데 이 돌아버리게 재미있는 이유를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골프로그 카테고리를 만들고 지난 6개월동안 쉴새없이 골프가 재미있는 이유를 탐구한 결과! 내가 내린 종합 결론은!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많은 숫자의 재미 요소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프가 재미있는 이유를 명확히 정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다른 운동에 비해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성별, 나이, 성격의 스펙트럼이 넓은게 아닐까 생각한다.

골프 초창기에는 골프가 귀족들만의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민들사이에서도 널리 유행했는데, 골프에 지나치게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 금지령까지 내려지기도 했단다. 지금도 골프의 진입장벽이 낮아진다면 스마트폰 중독만큼이나 중대한 사회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골프 금지령과 반발 사이

골프에 관한 첫 공식 문서 기록은 ‘금지’다. 1457년,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 2세가 "잉글랜드와 긴장 관계로 나라가 위태로운데 사람들이 골프와 축구에 빠져 군사훈련을 소홀히 한다"며 골프

www.joongang.co.kr


그래서 그 각각의 재미요소가 뭔지 내 나름 7가지로 정리해봤다.


1.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안타깝게 멈춰버렸다.....조금만 더 세게 쳤으면 들어갔을건데...

일단 막대기를 들고 공을 쳐서 어느 정도 보내는 것까지는 웬만한 성인이면 한두 번의 연습으로 가능하다. 장비나 그린피와 같은 주변적 요소의 장벽이 높은 대신 골프채로 공을 치는 것 자체의 장벽이 높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조금만 더 하면 70미터를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조금만 더 하면 100미터,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드라이버 비거리 250을 꿈꾸게 된다. 비거리만이 아니라 정교한 어프로치샷에서도 '조금만 더 하면'의 원리가 작용한다. 실력에 비해 점수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조금만 더'가 가능하게 만든다. 90타와 100타는 천지차이의 실력이지만 90타를 치는 사람도 어느날은 95타, 98타를 치게 된다. 이때 100타는 조금만 더 하면 95타를, 92타를 칠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과 미련을 끊임없이 얻는다. 100타가 오늘 드디어 92타를 쳤다고 해보자. 그럼 그 다음은? 조금만 더 하면 90언더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2. 칭찬으로 만드는 골프의 늪

골프에 빠지려면 처음이 재미있어야 한다. 이제 겨우 공만 맞추는 수준인데 민폐 끼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나에게 과하다싶을 정도의 칭찬과 격려가 쏟아진다. 잘한다!, 와 골프천재 아니야?, 이 정도면 진짜 잘하는거야!, 처음이 이 정도면 금방 늘겠다. 내가 잘 치고 있는건지 아닌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의 아낌없는 칭찬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고 골프 자체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그러면 크게 관심이 없었다가도 한번 더 가볼까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골프채를 처음 잡는 날부터 나는 앞으로 30년을 골프를 칠거야,라고 생각하겠나. 다 이렇게 당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물개박수를 쳐주던 주변의 골프인들 때문이다. 하지만 초심자에게 쏟아지는 칭찬은 곧 말구찌라고 불리는 말로하는 방해공작(일종의 놀림이다)으로 바뀔 거다. 칭찬이 쏟아질 때 마음껏 기분 좋게 플레이하시길!

3. 공놀이로 점수매기기 못 참지

인간은 무슨 이유에선지 공을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어떤 습성이 있다. 그러니까 공을 발로도 차보고 손으로도 쳐보고 하다못해 막대기로도 치는 것 아닐... 아무튼 공놀이 자체도 재미있는데, 공놀이를 얼마나 섬세하게 잘 했는지를 가지고 점수를 매겨? 매 홀마다 등수가 나와? 승부욕 강한 사람들은 눈돌아가는 포인트다. 점수로 이기고 지고를 하다가 재미없어진 사람들은 급기야 돈을 걸고 게임을 한다. 승부욕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내기 골프를 하면 골프실력이 금방 는다는 속설도 있다. 각 홀 마다 이겼는지 졌는지를 따지는 방식도 있고(이기면 업up 지면 down), 누가 홀컵에 가장 가깝게 공을 떨어뜨렸는지(니어 near), 누가 가장 긴 거리의 드라이버샷을 쳤는지(롱기스트 longest) 등 세상 모든 게임법은 다 적용해놨다. 골프 3년 이상 치신 분이 주변에 있으면 내기 종류가 어떤게 있는지 한 번 물어보시라. OECD같은 희안한 단어를 막 들을 수도 있다.
 
4. 잔디밭을 거닐며 계절도 느끼고

골프는 야외 운동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첫번째로 생각하는 골프의 재미가 '잔디' 때문일 것이다. 녹음이 풍성해지는 시기에 양잔디로 된 골프장에 가면 양탄자처럼 촘촘하고 폭신폭신한 잔디를 밟아볼 수 있다. '밟지 마시오' 팻말이 없는 드넓은 잔디밭을 마음껏 밟아볼 수 있는 것은 골프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인 것이다. 
 
도심에서 볼 수 없는 한적한 풍경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한 번의 라운딩에는 최소 4시간이 소요되고, 그 시간동안 야외에서 바람과 햇빛을 맞으며 보내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날의 기온, 햇빛의 강도, 바람의 방향이나 세기같은 것을 세세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4시간을 아침에 보내느냐 저녁에 보내느냐에 따라서도 또 달라진다. 계절은 또 어떻고. 조금 뜨거워진다 싶으면 금방 까맣게 타기도 하고, 생각보다 서늘한 기온에 가져온 바람막이와 경량패딩을 마구 껴입게 되기도 한다. 당연히 계절에 따라 녹음으로 가득차고 울긋불긋하고 또 하얗게 덮인 풍경도 보게 된다.
 
5.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

또 하나의 큰 재미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영업활동의 일환으로 가는 라운딩은 예외로 하자. 쉽게 말하면 하루종일 친구들이랑 골프장에 놀러가는 거다. 라운딩 전에 같이 국밥 한 그릇 때리고 라운딩하면서 웃고 떠들고 놀리다가 그늘집에서 간식먹고 또 끝나면 같이 저녁먹고.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의 라운딩도 여기 적은 다른 요소들 덕분에 충분히 재미있는데,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면? 두 배, 세 배로 재밌어진다. 
 
6. 따로 또 같이 보내는 느슨한 유대감

이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골프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난 사실 파워내향인이라서 너무 긴 시간을 타인과 보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골프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새로운 사람들과도 천천히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장치다. 잘 모르는 사람과 당장 마주보고 앉아서 밥을 먹으며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지만, 카트에 탔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며 짧은 대화를 충분히 나눈 뒤에 마주 보며 한 시간 밥을 먹는 것은 훨씬 수월하다. 플레이할 때도 공이 같은 곳에 있으면 같이 걸어가기도 하고 먼 곳에 있으면 혼자 걷기도 한다. 서로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응원하면서 함께 라운드를 즐기지만 내 플레이는 나 혼자서 한다. 라운딩하는 4시간, 앞 뒤의 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6시간쯤을 다른 사람들과 느슨하게 섞여서 보내는 것은 확실히 천천히 친해지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7.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쇼핑...!

스포츠 중에 가장 많은 부수적 지출이 가능한 스포츠가 골프 아닐까 싶다ㅋㅋㅋ 비거리나 정확성 향상에 도움이 되어줄 것만 같은 아이템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도움이 안 될게 뻔해도! 내 마음을 훔치는 귀엽고 예쁜 아이템들이 얼마나 많은지! 기성품으로도 상상초월의 아이템들이 있는데 무한한 커스터마이징의 세계도 갖추고 있다. 드라이버 하나만 해도 헤드, 샤프트, 그립을 다르게 조합하면 새로운 드라이버가 된다. 그래서 클럽을 하나 완성하면? 어, 저 사람은 사자인형 커버를 씌웠네? 어, 스카티카메룬 퍼터커버..? 캐디백이 더 가볍게도 나오는 구나? 연습장 다니기엔 이런 하프백도 괜찮은데?... 골프공도 천차만별이다. 공이 몇 겹으로 구성됐는지, 소재가 뭔지에 따라 다 다르다. 컬러도 여러가지고 반반인 컬러의 공도 나온다. 옷도 입어야지 모자도 써야지 골프화는 또 어떻고!  아휴 증말 끝이 없다!
 
골프가 왜 재미있는지에 대해 막연한 느낌만 있었는데 드디어 언어로, 글로 풀어냈다. 내가 적은 7가지 모두에 조금씩 해당되어서 즐거움의 총합이 커진 사람이 있을 것이고, 7가지 중 몇 가지에서 강한 즐거움을 얻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풀어내지 못한 다른 즐거움도 있을테고. 아무튼 골프가 너무 재미있는데 왜 재미있는지 설명하는데는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내 글을 보고 골프가 왜 재미있는지를 설명할 때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들은 사람들이 빨리 골프를 시작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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